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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밀한 작가노트 모음집

2020 타인의 궤도 - 輪(륜)

 시작할 때엔 끝이 있음을 항상 유념해야한다. 나는 그것을 종종 잊곤 한다. 내가 잊었던 때는 그 해 2월이었다. 6월이었으며 10월이었고 5월이기도 했다. 사람의 상냥함은 독이다. 그 상냥함에 끝이 있음을 망각하여 시작이 된다. 나는 그때 신화에 빠져 있었다. 사람들은 대게 이카루스를 기억하고 다이달로스를 기억하지 못한다. 나는 다이달로스가 되길 바랬다. 경고를 잊지 않고 무난히 사는 삶. 그러나 나는 값비싸 보이는 것들을 좋아했다. 그 중 사람이 제일 값비싸다고 보인다고 생각했다. 사람의 기호나 태도가 한 권의 책 같아서 옆에 두길 좋아했다.

 

 다이달로스는 이상을 멀리하며 경고를 잊지 않았다. 나는 이상을 옆에 두며 무던히 살고자 했다. 아둔했다.

 사람 손을 타면 그 전으로는 못 돌아간다. 매번 이상을 쫓는다. 상냥함에 그리 된다. 한번도 당연하게 생각한 적 없어. 현실로 떨어진다. 내가 누구에게 무엇을 잘못했길래 나는 이리사는가. 해솔이와 삶의 끝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다. 우리는 전생의 업으로 윤회를 한다 했다. 윤회의 끝은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 거라고 했다. 사람을 기다리고 사람을 보내는 번민의 굴레. 의사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윤빈씨 그렇게 하나하나 아파하면 못 살아요.

 나는 술에 취해 그네를 타러 가자고 했다. 나는 열심히 발을 구르고 너희는 아슬아슬한 나를 땅에서 지켜보았다. 멀어졌다가 가까워졌다. 맞은편에는 그네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희는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그러다 영영 간 사람이 됐다. 분명히 같이 타러 왔었는데 그네를 멈추고 보니 보내고 있었다.

 그 해 9월에 꿈을 꾸었다. 눈이 정강이까지 내렸다. 나는 눈을 좋아했다. 눈이 오면 꼭 누구보다 먼저 전화를 걸어서 말하곤 했다. 꿈에서도 너희는 없었다. 나는 눈이 온다고 말하지 못해 아쉬워했다.

 나는 그리고 조용히 속으로 빌었다. 신에게 빌었는지 나에게 빌었는지 이제는 기억나지 않는다.

고할 것이 있습니다. 나는 사람을 좋아했습니다. 사람 계속 변하기에 낙원으로 삼으면 안된다고 말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제 낙원이었습니다. 아직 어릴 땐 하나 허투름 없이 귀이 여기고자 했습니다. 아등바등한 밤들이다. 사람의 선한면을 믿었고 그것이 제 신념이고 삶이었습니다. 누구도 고의로 남을 상처 입히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의도하지 않은 상처에도 이렇게 심난한데 어찌 그러겠습니까? 한 번도 당연하게 생각한 적 없어. 좋아하는 만큼 멀어지고자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했습니다. 제 오만입니다. 너는 나를 종종 현실로 잡아챈다.

내가 고할 것은 이런 것을 앎에도 나는 이것이 기질이고 천성이라 버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오래된 일기장을 버리지 못하는 것. 가치 없어진 편지들을 고이 간직하는 것. 선물 받은 향수를 뿌릴 때 마다 생각하고 안녕을 바라는 것. 나는 당신들 때문에 안녕치 못하더라도 당신들이 안녕하길 바라고야 마는 것. 내가 누구에게 얼마나 큰 실수를 했길래 나는 이리 사는가. 그래서 내가 고할 것은, 나는 사실 눈이 온다고 말 할 수 있는 날을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멀어지는 것을 삶의 부분이라 보고자 한다면 분명 가까워지는 것도 있을 테니.

빈자리 찾기

 나는 아직까지 짝사랑하는 이들이나 죽은 이를 그리워하는 이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들은 상대방을 본인에 맞게 바꾼다. 입에 달게, 쓴 기억조차 아련하게 바꾸는 것이다. 그 기억을 모아 그 사람으로 만든다. 보기 좋게 재단된 기억이 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멋대로 저울질하여 오려낸 기억을 감히 사람이라 말 할 수 있나? 대게 이런 경우는 망자이기 때문에 한 쪽은 입이 없다. 그래서 이 이가 말하는 사람을 판단할 방법은 오직 입에서 나오는 말뿐이다. 그러한 기억에서 나온 말이 진실되겠는가? 이들은 양면성을 망각한 채 어떤 한 성질로 사람을 규정한다. 

  그래서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말할 수가 없다. 가령 아버지를 떠올리고자 한다면 나는 그가 인자하며 현명했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를 떠올리면 떠올릴 수록 내 뇌는 과부화가 오며 무언가 잘려나가고 왜곡됨을 느낀다. 그러면 나는 행동을 멈추고 가만히 눈을 감는다. 이게 다 무슨 부질없는 행동인가 

 매번 인사는 잘지내? 이다. 아빠 잘 지내? 그러면 나는 큰 목소리로 내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것이 우리들의 대화방식이다. 7년 동안 답신은 없었다. 나는 그저 표정을 보며 지레짐작할 뿐이다. 아 이게 내가 서두에 언급한 아둔한 이들과 무슨 차이가 있는가. 그저 짐작하고 보기 좋게 재단하고 후에 그 꼴을 보고 그랬노라 하며 맛 좋은 기억을 반추할 뿐이지.

Dear my disaster

-겨우살이와 해일이야기

나는 아마 날 때 눈꺼풀에 어미가 아니라 모든 사람을 보았나 보다. 조류는 날 때 가장 처음 본 것을 어미라 여겨 그토록 따른다 던데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고 가장 나중에 서야 어미를 사랑할 줄 알게 되었으니. 내 눈에 비친 건 어미가 아니라 모든 사람이었나 보다. 그러니 나는 본디 사람을 사랑하게 났다. 타인을 미워할 수 없게 태어난 사람. 태생은 거스를 수 없다. 그렇기에 아무리 겪어도 항상 다른 이를 어여삐 여겨 사랑스러움에 마냥 입매를 비비는 것이다. 손에 쥔 게 무에 쓰이는 거던 나는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손에 쥔 것이 내 이 두 뼘 안 되는 조그만 가슴을 뚫는다 하여도 태생은 거스를 수 없으니.

 

내 어미도 신화의 부녀처럼 그랬나 보다. 가장 연약한 이에게는 내 아이를 죽이지 마소서 청하지 못했나 보다. 사람은 고통을 비교한다. 나의 어떤 고통도 어미의 출산에 비하지 못할거라 생각했나보다. 그러나 나는 쉬이 죽었다. 겨우살이가 나를 쉬이 죽였다. 나는 그렇게 내 목을 쥔 손에는 아양을 떨고 칼을 쥔 자에게는 웃는 이가 되었다. 그리고 그 겨우살이가 당신 아이의 가슴을 뚫는다. 아 어미라고는 어찌 알았으랴, 고작 비천한 그것이 자신의 아이를 해할지 라는 것을. 그러나 어미마저 모르는 것은 나는 내 가슴을 뚫는 겨우살이 마저도 사랑한다는 것이다. 비천한 겨우살이마저 사랑하여 나는 매번 가슴을 뚫리고 눈물 흘리며 아파한다. 그것이 내가 사람을 사랑하는 방식인 것이다.

 

재난이 또 지나간다. 이번 파도가 지나가면 다음 파도는 언제 오려나. 서두르지말고 천천히 오렴. 나는 흩어진 내 살점을 주워 듬성듬성 빈 가슴에 채워 넣는다. 겨우살이가 가슴 군데군데에 박히어 많이 채우지 않아도 된다. 평생을 앓고 살아갈 짐이다. 박힌 이것을 질책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 가슴에 들인 순간부터 뿌리를 내렸기에 뽑는 것이 더 아둔한 걸 이제는 잘 안다. 질책하는 만큼 바뀌는 것은 없고 시간은 속절없이 지나며 다음 해일이 오면 내가 무너져 버린다는 걸 알았다. 그러니 이 겨우살이도 사랑해야 한다. 다음 해일에도 무던히 살아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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