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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 SOLO EXHIBITION

​마지막 숨이 가는 입구

2021.12.07~2021.12.12
사이아트도큐먼트

마지막 숨이 가는 입구

삶 속 관계를 기억하거나 그로부터 현실을 살아간다는 것에 대하여

 

양윤빈 작가의 이번 전시에서는 병상에 있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으로부터 시작된 여러 작업들을 만나게 된다. 작가는 대화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중한 병고에 계신 부친의 짐 정리를 하던 중 인화가 안된 필름 두 통을 발견하게 되면서 부친이 찍었던 사진을 통해 작가와 아버지 사이의 삶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작업은 단순히 사진을 통해 기억의 조각을 하나하나 맞춰가는 일이었을 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로부터 시작하여 누군가와 함께 경험한 사건들로부터 공유하게 되는 기억이 갖는 의미와 같은 심층적 차원의 작업으로 확장하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별히 자신의 부친과 함께 어린 시절 시간을 보냈던 흔적이 남아 있는 사진들의 경우 작가에게 그 의미가 남다를 수 밖에 없었을 것인데 작가가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작업들을 하게 된 동기 중에는 작가가 발견하게 된 사진에 작가 자신이 기억할 수 있는 것도 있었지만 전혀 기억할 수 없는 것도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기억이란 본래 시간이 흐르면서 망각의 지점이 발생하기도 하고 흐릿해지거나 변조되기도 한다. 그런데 작가가 자신의 삶의 일부이지만 자신의 기억 속에는 완전히 없었던 부분까지 사진에 기록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면서 기억이라는 것이 자신의 소유라고 생각이 틀렸음을 알게 되었고 기억을 만드는 작업으로부터 관계를 다시 구축하는 작업으로까지 연장하여 작업을 진행하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작가는 자신의 작업이 사실을 토대로 만들었지만 픽션과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것이 현실을 느끼는 방식이고 현실로 돌아오는 방식이라고 한다. 작가는 부친의 병환이 지속되는 현실로부터 작업을 함으로써 도피하고자 하는 현실적 상황들로부터 그것을 이겨내고 다시 삶의 끈을 단단히 붙잡게 되는 양가적 상황을 경험하고 있는 것 같다. 작가에게는 이처럼 작업을 해나가는 것이 고통과 애증이 교차할 수 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생존하는 방식이자 아버지에 대한 존경과 위로의 마음을 지속해서 붙들게 되는 힘이 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예술 작업이 다른 이들을 위로하거나 외부 세계에 아름답고 새로운 것들을 전해주는 일이 되는 경우도 많지만 양윤빈 작가에게는 무엇보다도 작가 자신의 삶을 일으켜주고 자신의 기억에 적절한 자리를 잡아주며 자신 주변과의 관계를 성립시켜주는 것으로 작동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의 작업은 늘 행복하고 즐겁게만 살아갈 수는 없는 평범한 우리 시대의 모든 아픔을 가진 이들에게 자신의 아픈 기억들과 현실의 상황들에 대해 적절한 관계 맺기를 하는 방법에 대한 안내서를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특히 부모로부터 삶을 얻게 된 세상의 모든 이들에게 영원할 수만은 없는 그들과의 관계에 대해 그러나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것 같은, 그러나 불완한 기억에 대해 양윤빈 작가는 하나의 좋은 방법을 제시해 주고 있는 것으로 읽혀진다. 삶에는 마지막이 있기에, 그토록 유한한 삶이기에 소중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의 삶에 대한 기억들과 삶에서 맺은 많은 관계들은 그의 작업에서 보여주듯 이제 다시 되돌아보고, 다시 추억해냄으로써 자신만의 방식에 의해 특별한 의미로 남게 될 것이다. 작가는 이제 작업에서 그러한 의미들이 무엇이었는가에 대해 과거를 추억하면서도 그러나 새로운 어법으로 담담히 삶의 의미들을 되새기며 이를 써내려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의 삶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동시에 생생하게 느끼면서 말이다.

 

이승훈 (미술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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